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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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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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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14:48:35

선화도

 

<영성이 왜 중요한가?>

 

현대사회에는 이성, 감성 보다 영성 중요하고 한다.

서양에서는 과거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 샤머니즘의 무당이나 특유의 신화를 만들어 각 신에게 해당되는 신관, 사제를 만들어 영적시계를 대체할 대리자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이성발달을 중시한 합리주의, 계몽사상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이 세계를 스스로 인식하는 시대가 오기도 하였다. 인간이성의 무한한 기대는 산업혁명을 거쳐 로마문명과 버금가는 프랑스의 벨에포크처럼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한한 인간의 이성중시는 끔찍한 세계대전을 통해 반성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예전 영적세계를 추구하면서 유신론적 실존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양사상에서 영성이 언급된 사례는 로마문명이 멸망하고 프랑크제국이 세워져서 기독교의 도입(로마시대에도 기독교가 국교였지만 본격적으로는 프랑크왕국에서 기독교가 발전)과 토마스아퀴나스의 신앙의 영성과 이성을 결합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교황의 십자군원정의 실패, 로마가톨릭의 타락은 종교전쟁을 거쳐 사제 뿐, 아니라 누구나 영적체험을 할 수 있다는 개신교등장으로 인해 영성이 위주의 사상은 이성위주의 사상(르네상스, 계몽사상, 합리주의)로 대체되게 된다.

동양사상의 대표적인 사상으로는 유교, 불교, 선(禪)의 사상이 있다.

유교는 이성적 합리적 사상체계이기 때문에 종교라기보다 정치적 이념에 불과했다. 내세와 초이성적인 현상은 불교의 참선이나 불경을 외는 종교적 행위,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 수련하는 선의 사상이 동양사상의 영성을 고려한 종교라 할 수 있다.

2008년 포스트모더니즘의 서구의 사상의 몰락으로 개인이 이성과 감성 위주의 정신적인 세계의 성찰보다 초자연적인 우주의 영성을 취득하는 경향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템플스테이, 기수련원, 마음수련원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은 원래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알고자하는 의문을 가진 채 지구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영성취득방법>

종교에서 영성 취득 방법은 샤먼(빙의 신접), 기독교, 로마카톨릭에서 성령체험, 초능력, 요가, 명상, 기수련을 통한 체험 등이 있다.

영적체험은 영적직접체험과 간접영적체험이 있다.

직접영적체험은 종교인의 사제나 수도사 무당, 목사처럼 직접 태초에 시원에 생성된 우주와 영적 세계를 접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의 이성, 감성의 내제적인부분을 초월한 초월적인 세계를 직접 접할 수 있지만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다수의 일반인이 극단적인 엑스터시와 황홀경을 체험하는 과정이 무리가 있다. 또한 학습을 강요받은 현대인이 학습 이전의 초자연적인 우주적인 영적현상을 접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영성 취득의 간접적 취득 방법이 있다.

인간이 자신의 관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해도 유물론적으로는 관념론에 머물 수 없다. 인간은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 생산활동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대부분 인간은 생산활동이 다수이고 소수가 계몽을 통해 당시의 관념을 다수의 민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불교에서는 소수의 부처의 해탈로 영적체험의 소수화를 대체할 대승불교 생성으로 보살의 도입과 로마가톨릭의 성인을 들 수 있다. 불교의 성인이나 보살의 행적을 암송과 절과 주문을 외우면 개인의 종교적 행위로 간접적으로 영적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살이나 성인의 텍스트가 본질보다 양식에 집중하게 됨에 따라 보살, 성인들의 행적을 암송을 강요하고 불교에서는 절을 3000배 하거나, 로마가톨릭에서 묵주기도를 오래하는 종교적 행위는 텍스트가 영성수련자의 영혼과 정신에 체화되지 않는다. 보살과 성인이 가진 특유의 텍스트를 이해하기에는 종교적인 학습이 별도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미디엄으로>

현대인은 과거의 직접적, 간접적 영적체험보다 영성을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매스미디어 발달로 소수의 관념을 엘리트나 종교지도자를 통해 대다수의 계몽, 주입했던 세계와는 달리 매스미디어를 지배하는 권력자가 대중에게 영성을 대체할 사상을 전달하는 시대가 출현했다. 멀리 일어나는 사건과 가공된 현실의 세계를 광기가 영성을 대체하면서 인류의 죄악은 유대인대학살처럼 대규모로 증대되어 인류의 선(善)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미디어는 우리의 정신에 정보제공자의 사상을 수동적으로 주입하여 주체를 상실시키고 멀리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아우라를 상실시킨다. (발터벤야민) 또한 복제성으로 인해 영성의 순수성, 일회적 경험의 특수성을 희석시키게 만든다,

요즘은 미디어의 수단보다 미디엄인 목적이 중요한 시대이다.

붓과 붓의 안료의 미디엄, 붓질의 순간적인 그리기 행위를 통한 영적세계의 구축은 우주의 아우리인 기(氣)를 미디어나 별도의 학습을 통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노자도덕경-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의 도(道)를 알기 이전의 학습 이전의 순수성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 위함이다. 미디엄 자체와 영적세계를 접한 미디엄을 지배하는 주체자는 인간의 주입된 학습이전의 선(善)의 영적 아우라를 뿜어내는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붓질의 미디엄은 직접영적체험과 간접영접체험을 대체제인 것이다.

 

<이미지와 그림행위>

그림은 원래 알타미라 동굴 벽화처럼 주술적의미로 자기가 원하는 심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다 중세시대의 영적세계를 표현하는 종교화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 때 투시도의 개발로 개인이 인간적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사진술의 발달로 인한 인상주의에서, 드디어 대상의 요소를 해체하여 구성하는 추상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에 그림은 그림을 이루는 요소가 해체되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요소로 환원된 미니멀리즘. 절대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전세계의 근대화는 모더니즘으로 발전하게 되고 모더니즘의 규격화에 대한 비난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출현하게 되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구조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철학 신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이 구조주의를 대체, 보완하기보다 서구에 적합한 모델로 동양이나 제3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실패한 이론이 되었다.

그리하여 2008년 세계금융위기, 스마트폰의 발달로 누구나 이미지를 쉽게 취득하는 시대를 맞이한 이후에 포스트모던 미술이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였다. 마크로스크나 그림의 절대적 요소로 환원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그림도 그림의 본질로 그림의 본질인 그리기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태초의 그림은 원래 알타미라 동굴 벽화처럼 주술적의미로 자기가 원하는 심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미술사적으로도 그림이란 더 이상 그림을 구성하는 오브제의 요소를 쪼개서 환원하는 과정이 아닌 그리기 고유의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림이란 미술사적으로 인류역사상의 진보로서 진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화도란>

선화도는 영적체험의 직접적 영적체험과 간접적 영적체험을 이미지의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선 단순하게 인지되는 얼굴의 그리기의 행위를 통한 직접 전달과 함께 그리기 본질의 순수성을 체험하기 위한 그림이다.

이는 이전의 영적체험의 글에서처럼, 붓질의 순간적인 그리기 행위를 통해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노자도덕경-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의 도(道)를 알기 이전의 학습 이전의 순수성의 선(善)을 그대로 전달하여 우주의 아우리인 기(氣)를 미디어나 별도의 학습을 통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장사상의 자연에서의 방임이나 불교의 공(空)의 비움의 소극적 영적체험을 넘어 샤머니즘의 적극적 영적체험을 중시함으로서 이성 중시로 인해 인간의 잃어버렸던 영적순수성을 우주의 기(氣)를 빨아들여 붓의 미디엄을 통해 매체를 넘어 직접 영적 기운을 개인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화도는 헬레니즘시대의 스토아 학파의 범신론에 입각한 “세상 모든 것이 신”이라는 사상을 가진 그림이라기보다 인격을 가진 신의 모습을 단순하게 표현된 그림이다. 이 신의 이미지는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나 로마신화의 쥬피터의 조각상처럼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인간의 영역을 넘은 인간의 계급의 위에 있는 존재라기보다, 표현양식에서는 초상화의 형식을 가지고 단순한 선으로서 감상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서양의 초상화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지위의 위상을 재현하거나 자아상처럼, 자신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목적을 가진다면, 동양의 초상화는 단순히 인물을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정신까지도 옮겨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특히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단순이 당대의 유명인사를 재현하는 목적 뿐 아니라,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얼굴표현, 묘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당시 세밀한 묘사가 그 초상화의 대상을 이해한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선화도는 동양사상의 정신도 표현하지만 조선시대 초상화처럼 정밀한 묘사에 집중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문명에서 오는 중압감과 불안으로 인해 단순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선화도는 그리기 행위에서 오는 아우라도 중요하지만 단순하고 친근한 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전달해주는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화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그려진다. 선화도는 개인마다 다르게 그려지기 때문에, 복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제와 유사((類似)는 다르다. 복제란 원본의 순수한 선(善을) 잃어버린 새로운 모조품인 것이고, 복제를 함으로서 원본과 멀어지게 됨으로서 원본이 가진 특유의 아우라를 상실하게 된다.

선화도는 복제가 아니라, 유사((類似)라는 방법으로 그려진다. 유사가 모방을 통한 원본의 미세한 왜곡으로 복제와는 차별된 원본과 동일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유형학처럼 하나의 유형(Topology)을 가진다. 유사가 선(善)이라는 동일성 아래 하위유형으로 차별성으로는 개인의 자신의 내면의 미세한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영적능력의 갈구를 거부하는 문명에 대한 불안에 대한 미세한 감정에 대한 포착과 이를 치유로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작가의 작품표현의 단서이기도 하다.

 

글 나미에킴(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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